아무 말 없이 우리는
( 트럼프 - 체르타, 체르시오, 유현 ) |
여하단장은 시오를 바라보았다. 시오의 두 은안은 여하단장을 향해있었고 여하단장은 시오를 향해있었다. 시오의 여하단장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그저 무감정뿐이었다. 여하단장은 시오를 향하더니 시오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이상하게 다정한 모습이었다. 심하게 다정했고 시오는 그 모습이 너무 많이 익숙했다. 시오의 기억 속의 여하단장은 다정하였지만 진심은 아니었다. 여하단장은 늘 시오에게 진심이 아니었다. 화를 내지도 않고 분노에 찬 목소리도 내지 않고 웃지도 않고. 시오의 어릴 적 기억 속의 인형 같았다. 다만 주도권을 잡고 있는 쪽이 다르다. 인형의 주도권을 잡는 쪽은 시오가 아니라 여하단장이다. 아무 말 없이 보는 여하단장의 생각은 알 수 있는 듯 없지만 늘 주도권을 잡는 쪽은 여하단장이다. 그런 시오는 여하단장을 바라보며 웃기만 했다. 이 사람 앞에서는 부하이면서 여자가 되어 여하단장의 감정 없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여하단장. 당신은 제게 그 시선만 보내지 마세요. 시오는 여하단장의 감정도, 말도 없는 모습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여하단장의 그 모습은 언제나 시오를 비참하게 만든다. 여하단장의 아무 말 없는 그 모습은 시오를 언제나 외롭게 만든다. 여하단장의 아무 말 없는 모습은 언제나 시오를 조용하게 만든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강한 건 말이다. 말은 언제나 강하다. 시오를 다물게 하는 건 여하단장의 말이다. 시오는 언제나 그 사실을 알고 있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그리고 여하단장은 말의 무게를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쉽게 떠들지 못한다. 여하단장은 여하단의 단장으로 언제나 말에 대한 책임을 진다. 시오는 그걸 잘 알고 있다. 저의 비참함보다, 외로움보다, 슬픔보다, 조용함보다 여하단장이 우선이었다. 시오의 모든 세상은 여하단장이 우선이었다.
“단장님.”
“왜 그러느냐, 시오.”
“저는요, 단장님 당신이 책임지는 게 뭔지 알고 있어요.”
“무엇인지 네가 안다고?”
여하단장이 비틀린 웃음을 짓는다. 시오는 알고 있다. 여하단. 여하단이다. 여하단장은 여하단을 책임진다.
“저는 단장님이 여하단을 책임지는 걸 알고 있어요. 그리고 저는 여하단의 일원이고요. 그러니까 저는 당신이 침묵을 한다면 저도 침묵으로 대응을 할 수 밖에 없어요. 차라리 절 혼내시는 건 어떠세요? 당신에게 사심을 가지고 다가오고, 당신에게 내 삶을 인정받기를 원하고……!”
“조용히 하거라, 시오.”
시오는 비참했다. 당신은 늘 날 비참하게 만든다. 차라리 대놓고 외면이 쉬울 것이다. 당신을 향한 사심을 접어라 폭력을 가하는 게 더 당신을 향한 외면이 쉬울 것이다. 외면하고서 늘 언제나 나에게 다정하게 대해주는 당신은 진심으로 이기적인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좋아하는 난 더 이기적인 여자일 것이다. 여하단장. 당신을 사랑하는 죄는 버겁기 그지없다. 버겁다. 차라리 테쎄라에 의해 사형을 당하는 게 나을 것이다. 시오는 늘 삶을 갈구한다. 하지만 죽음을 돌려주는 게 자신에게 더 이기적이라는 걸 알고도 늘 삶을 갈구하는 동시에 죽음도 갈구한다. 아무 것도 얻지 못하는 삶을 원망한다. 그런 당신을 사랑하는 나를 더 원망한다. 좋아한다는 감정이 애절하다는 걸 알면서도 이용하지 않는 당신은 나보다, 삶보다 더 원망한다.
시오는 아무 말 없이 여하단장에게 다가가 몸을 숙였다. 입을 맞추려고 했다. 하지만 맞추지 않았다. 무음無音은 언제나 강하다. 나는 당신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아, 이기적인 여하단장, 시오, 그리고 시오의 마음. 모두 다 이기적이다. 이기적인 건 시오에게 있어서는 죄악이다. 시오는 그걸 잘 안다. 죄악은 보이지 않아야만 하는 거다. 죄악을 숨겨라. 시오는 늘 저 자신에게 말을 하곤 했다. 죄악을 더럽히지 마라. 시오는 죄악을 땅에 처박는다. 시오는 늘 이기적이고, 죄를 저지르고 그 앞에 더러운 몸으로 여하단장의 앞에 선다. 시오는 이기적이다. 여하단장은 이기적인 걸 못 본다. 그건 죄이며 여하단장은 죄를 처벌을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단장님. 날 버리세요. 늘 말하지 못하는 말이다. 감정이 사랑愛이 되어 시오를 이룬다는 너무나 이기적인 이유인 탓이다. 시오, 사랑한다. 그 말도 원하지 않는 주제.
“저는, 버림을 받는 게 무서워요.”
오늘도 그 말만 한다. 사실이기는 하지만 잔인하다. 잔인하다. 좋아한다는 말을 하고 거절을 받는 것 보다 외면을 받는 게 더 아프다. 여하단장, 저는 당신에게서 외면을 받는 게 괴롭습니다. 그 말을 언제나 전하지 못한다. 여하단장을 향한 진심이 시오를 죽인다. 죽이고 또 죽이고, 너무나 당연한 공백과 외면이 시오를 이룬다.
“시오.”
“네.”
“나는 절대 너를 사랑할 수 없다.”
“알고 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잔인하신 나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너무나 다정하던 우리 오빠의 집을 불태운 범인을 최대한 ‘사형’을 받게 하는 것뿐이죠. 우리 약속을 했잖아요. 단장님은 내 원수를 잡게 되면 최대한 법의 심판을 받게 해주는 것. 그리고 나는 당신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것.”
그러니까, 나, 좀, 살, 려줘……! 시오는 소리치지 못했다. 속으로 억눌렀다. 시오는, 여하단장에게 삶을 요구한다. 삶을 희망한다. 여러가싱감정이 뒤섞였다.
“언제나 나의 잔인한 주군. 나는 당신에게 있어서 방패입니다. 말 그대로 방패. 그리고 단장님 당신이 나에게 있어선 목숨 줄, 사랑한다는 말로 숨통 좀 틔워줬으면 하고, 그렇지 않았으면 하고. 난 잔인한 사람이라는 거 존나 잘 아는데요. 저 좀 살려주세요.”
간절했다. 간절하고 간절해서 여하단장에게 시오는 간절하게 빌었다. 여하단장에게 빌고 있다. 살고 싶다고 하고 있다. 자신을 살려 줄 수 있는 건 여하단장 뿐이라는 걸 시오는 잘 안다. 그걸 이용해서 여하단장에게 빈다. 이용당하는 것은 저다. 이용당하기 쉽게 여하단장을, 상대방을 먼저 좋아한 것도 저다. 시오는 언제나 여하단장에게 빌고 있다. 이용해서 사랑하게 해달라고 이 무언無言의 상황에서 말하고 있다. 그러나 여하단장은 죄 없다. 언제나 좋아한 쪽이 손해다. 즉 손해는 시오다. 늘 시오가 손해다. 여하단장을 향한 그 말 없는 그 감정이 손해다. 그러니 늘 여하단장은 우위에 설 자격이 있다. 여하단장을 향한 일방적 통행은 늘 무언無言의 연모戀慕다. 말 없는 사랑. 그것 뿐이다. 허튼 감정이 시오를 이루고 시오를 살아가게 만들고 그리고 시오의 짙은 마음이 여하단장을 숨기고 말 없는 고백은 시오를 죽인다. 하지만 살아가게 만든다. 숨 막히는 공백을 이룬다.
단장님, 단장님. 시오의 지친 눈이 흐릿하게 웃는다. 절 좀 봐주시면 안 되나요? 폐부 찌르는 독설이 차라리 나을 것이다. 단장님. 시오는 슬그머니 웃었다. 시오는 여하단장을 좋아하지만 그래도 지쳤다는 듯이 웃었다. 지쳤다. 여하단장을 좋아한다는 것은 지치는 일이다. 그럼에도 좋아한다. 단장님, 단장님. (…체르타.) 들리지 못할 말을 뱉어낸다. 듣지 마. 좋아한다고 속삭이는 말을 듣지 마. 비참하게 만들어. 그 사람의 비참한 말은 늘 시오를 잔인하게 만든다. 숨 뱉어내고 모가지 뒤틀고, 시오를 흔든다. 시오를 흔드는 체르타. 체르타. …단장님. 시오는 여하단장을 그린다. 좋아한다는 감정은 시오에게 있어선 타락적이다. 시오는 연모와 어울려서는 안 된다. 사랑한다는 그 감정이 시오의 약점이 될 것이고 약점이 되어 시오를 때린다. 시오를 때리는 그 감정은 언젠가 죽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랑한다. 체르티를 사랑하는 시오는 언제나 약점 덩어리일 것이다. 단장님. 당신만이 절 죽일 수 있다.
…… 단장님. 여하단장은 시오를 흔든다. 시오에게 있어선 죄다. 흔들리는 게 죄다. 모가지 꺾이는 건 무섭지 않다. 하지만 여하단장이 자신을 죽일까 무섭다. 여하단장이 미우면서 사랑스럽다. 불변의 법칙이다. 사랑스러운 것을 끝마치면 깊은 두근거림만 있을 것이다. 여하단장을 사랑하는 이유는, 시오의 삶의 이유다. 무덤덤한 두 사람은 가식을 뱉어냈다. 단장님, 전요… 시오는 슬쩍 웃었다. 살아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장님.”
말을 뱉어내지 못했다. 단장님. ... 단장님, 단장님. 여하단장을 바라보더니 손을 잡고는 고개를 숙이더니 입을 맞췄다.
역시 조용함은 시오를 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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