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이 너였다
( 수상한 메신저 - 벤더우드, 벤더토리, 율란 )
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너와 어떻게 만났는지.
"벤더! 이것 좀 봐요!"
아이처럼 해맑게 웃고 있었다.
삐뚤빼뚤하게 놓인 케이크 위의 과자들도 직접 구운 것이겠지.
"별로.. 에요?"
"아니, 맛있겠는데?"
"정말요?"
정말 아이같이 귀여웠다. 어쩌다… 너를 만났을까?
"무슨 생각해요?"
"별로. 아가씨는 궁금해하지 않아도 돼."
심각한 표정의 그를 보며, 강아지 같다고 말해주던 눈이 촉촉하게 젖어갔다. 그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벤더우드라는 이름뿐이지만, 그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벤더!"
불쑥 불러오는 그녀의 목소리에 벤더우드가 고개를 돌리자 작은 손가락이 그의 뺨을 찔렀다. 뺨에 닿은 그녀의 온기도, 알 수 없는 이상한 촉감의 하얀색 이물질도 전부 느꼈다.
"생크림?"
"네, 생크림…음…"
"음?"
"웃어줘요. 벤더가 웃는 게 보고 싶어요."
설령 거짓 웃음이라도 좋으니 웃어 주면 안 될까요? 그건 내 욕심인 걸까요? 당신의 웃음이 보고 싶은 게, 내가 당신을 힘들게 하는 일인 걸까요?
그의 표정 변화를 볼 수가 없었다. 갑자기 두려워졌다는 게 옳은 표현이겠지. 포옥, 그에게 안겼다. 그의 품이 따뜻했다.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생각했다. 제 생각이 전해지길 바라면서도 바라지 않았다. 그에게 짐이 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아가씨가 갑자기 왜 이러실까?"
"얼굴에 생크림 묻힌 벌을 받고 싶지 않아서?"
애써 장난스럽게 말했다. 우울함 같은 걸 보여주고 싶진 않아서.
"벤더."
"음?"
"벤더우드."
"왜?"
"여사님!"
"여사라고 하지 말랬지."
얼굴만 보인 채, 그를 보며 해맑게 웃었다. 웃을 수밖에 없는 걸. 내 사랑이 눈앞에 있으니까.
"여사님! 나 조금 더 이러고 있고 싶어요."
"여사라고 부를 거면 떨어지라고 할 거야."
"너무해요, 벤더! 너무해!"
조금 떨어져서 입을 비죽 내밀었다. 못 말리겠다는 의미가 가득 담긴 미소가 벤더우드의 입가에 지어져있었다.
그의 미소가 좋아. 그게 웃는 게 좋아. 그리고 그 웃음이 나로 인해 웃는 것이라면 더 좋고, 나를 향한 미소라면 더더더 좋아. 당신이 좋아. 당신에 대해 그 무엇도 알 수 없더라도.
"토리?"
"사랑해요."
갑자기 치고 들어온다. 진짜 못 말려.
"나도."
아무 말없이 안겨있는 그녀의 정수리에 턱을 가져다 대고 눈을 감았다.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등을 토닥였다.
"나도 사랑해, 토리."
**
여름.
과거의 내가 진작에 너를 만났다면, 과연이 무엇이 바뀌었을까?
에어컨을 틀어놓아 썰렁한 집안에서 소파에 잠들어있는 그녀를 깨웠지만 일어나지 않았다.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혹시 무슨 꿈이라도 꾸고 있는 것일까?
과거의 나… 정보원이기 이전의 내가, 미래의 너… 그러니까 지금의 아가씨를 만났더라면 조금은 바뀌지 않았을까?
울게 하지 않을 텐데. 내 나이, 내 생일 모두 알려줄 수 있었을 텐데. 계속 옆에 있어줄 텐데.
"사랑해…요."
잠꼬대인 건가. 누구에게 하는 고백일까? 자신? 아니면 자신 외의 또 다른 누군가?
"정말로…"
눈물이 뚝…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어째서.
"토리, 일어나."
왜 우는지 궁금하진 않았다. 아니, 궁금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지금 당장은 알려고 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안 좋은 꿈을 꾸는 것일까. 그래서 눈물을 흘린 것일까.
"아가씨."
차라리 웃지, 그랬더라면 더 자게 했을 텐데. 차라리 웃지, 그랬더라면 조용히 보다가 갈 텐데.
눈을 비비며 일어나는 그녀를 보며 소파에 걸터앉은 벤더우드가 손을 꼭 잡았다.
"왜 울었어?"
여전히 잠에서 덜 깬 듯 조금 산발된 머리카락을 보며, 여전히 졸린 눈을 비비고 있는 그녀의 손을 잡아챘다.
"꿈꿨어?"
"…네."
"무슨 꿈이었는데 울어?"
"벤더우드."
"어?"
"벤더우드가 나왔어요. 웃었고 웃고 있었고 웃는다고 했어요. 내 앞에서."
무슨 소리일까? 자신이 나왔다고 하니까 괜찮다고 해야 하는 걸까. 그렇다면 그녀는 왜 눈물은 흘린 것일까.
"일어나니까 벤더가 있어서 더 좋아요."
"하?"
"보고 싶었어요. 내 사랑."
아침에 헤어지고 난 이후로 하루 종일 당신이 그리웠고, 보고 싶었어.
"음…나도."
늘 보듬어주기만 한다. 과거에도. 지금도. 미래에도 그럴 것 같아. 그의 따뜻한 품이 좋아서 계속 졸린 척했다. 그와 떨어지기 싫어서.
"토리."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이러고 있고 싶어요.
조금만 더 이렇게 당신 옆에서 쉬고 싶고, 자고 싶어요. 당신이 옆에 있고 싶어요.
일어나기를 포기했는지 벤더우드는 가만히 그녀의 등을 쓸어내렸다.
"그래."
당신을 향한 내 집착인 걸까요? 그런 걸까요?
"자자. 우리 아가씨."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그대로 눈을 감았다. 이대로 쭉, 잠들기를…
**
가을.
"무슨 생각해?"
"벤더 생각!"
"뭐?"
"음…여사님이 안아준 생각?"
"예전에도 여사라고 하지 말랬지."
"치사해! 벤더 완전 치사해요!"
아이같이 볼을 부풀리는 모습이 귀여웠다.
"음.. 방금 나 귀엽다고 생각했죠?"
"아마?"
"에이! 분명히 그 표정이었는데!"
예전부터 지어주던 그 표정이었는걸!
"그래, 귀여워. 토리 귀엽다."
"뭐예요. 그 영혼 없는 말투는?"
가을 햇살이 따사로웠다. 집 근처의 작은 공원의 잔디밭이었지만, 아늑하고 좋았다. 인적도 드물었고, 무엇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했기 때문에.
"음…벤더, 우리 점심 먹어요!"
열심히 벤더우드가 만든 도시락이었지만, 아무렴 어때.
"짠! 아, 해요!"
"먹여준다는 건가? 흠…"
"싫어요? 싫음 말고!"
젓가락을 내려놓으려는 그녀의 손을 잡은 벤더가 입을 벌렸다. 맨날 이래. 결국 다 받아줄 거면서 튕기고!
"벤더 나쁜 사람이야."
"응, 나 원래 나쁜 사람이야."
"근데 벤더 왜 이렇게 착해요?"
"뭐야, 그 모순적인 말은."
"벤더는 나쁜 사람인데 착해요."
자기가 말해놓고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저건 무슨 의미일까.
"벤더우드가 누군가에게는 나쁜 사람일지 몰라도 나한테는 착한 사람이에요!"
일방통행적인 믿음. 어쩌면 부담스럽게 느낄지도 모르는 순수한 그녀의 믿음.
"아, 나한테도 나쁜 사람인가?"
"어째서?"
"매일 안 웃어주니까! 웃어줘요!"
"억지야, 아가씨."
시무룩해지는 표정. 웃음이 안 나오고 배길까. 실시간으로 변하는 그녀의 표정이 보기 좋아서.
"이제 갈 시간이야, 아가씨."
**
겨울.
"메리 크리스마스! 벤더우드!"
왜 707 저 녀석이 같이 있는 거지.
불쾌해하는 표정이 얼굴에 다 드러났다. 생글생글 웃으며 '여사님, 메리 크리스마스!'라니…
"벤더! 크리스마스 파티해요!"
벤더우드의 표정 따위 개의치 않았다. 오직 크리스마스 파티할 생각에 들뜬 아이 같은 모습만 있을 뿐이었다.
"아, 공칠..씨..?도 같이 해요! 크리스마스 파티!"
"잠깐, 아가씨. 그건 좀.."
"헉! 좋음요! 크리스마스 파티!"
"야, 707 일 안 하냐?"
생글생글. 아이처럼 방방 뛰며 부엌으로 가는 토리의 뒷모습을 보며 벤더우드의 날카로운 눈초리가 707을 향했다.
"귀여운 아가씬데? 여사님과…잘 어울려!"
"얼씨구?"
벤더우드가 팔짱을 끼고 707을 노려봤다. 이젠 해탈할 수준이다. 내쫓기도 지쳤다. 이거야 원.
"아가씨. 대체 뭘 하는…"
"케이크! 크리스마스 케이크 구웠어요!"
직접 구운 케이크를 식탁 위에 올려두며 토리가 벤더우드를 잡아끌어 앉히고 707을 불렀다.
"공칠씨도 앉으세요!"
유일하게 만들 수 있는 게 케이크밖에 없어서, 이거라도 만들고 싶었다고. 사랑하는 사람과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었으니까.
"음.. 내가 잘못.. 온 것 같은데.."
"네? 그럴 리가요! 공칠씨도 드세요!"
아무런 근심 걱정 없는 웃음을 지으며, 자른 케이크를 담은 접시를 707의 앞에 내려놓았다.
"오붓한 시간 보내요, 여사님!"
707이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고 말하면 그녀가 믿을까.
달 둘만 남은 집 안에는 여전히 고소한 빵 냄새가 나고 있었다.
"정리 다했어?"
"음? 네! 다했어요!"
소파 앞에 서있는 벤더의 옆에 선 토리의 손끝이 거실 한구석의 꾸며진 트리를 가리켰다.
"별 달았어요! 그러니까 같이 소원 빌어요!"
"소원?"
"응, 소원!"
자신의 팔을 잡아끌고 트리 앞에 선 그녀가 눈을 꼭 감고 소원을 비는 모습을 보았다.
나의 사계절은 너와 함께였다. 부디 네가 나로 인해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소원을 속으로 속삭이며, 토리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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