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빛 아래 두 사람
( 앙상블 스타즈! - 사자나미 쥰 x 잇시키 타카나, 모밀 ) |
* 드림주 과거 이야기 有 *
*** 스토리를 급하게 읽어서 구멍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양해 부탁드리며, 불편하시거나 예민하신 분들은 피해주세요. ***
타카나에 대한 평가는 어디를 가나 비슷했다. 남들과 눈을 잘 마주치지 않으며, 고개를 푹 숙이고는 시간 대부분을 보내는 사람. 썩 좋은 소문은 아니었고, 타카나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고칠 수 있었지만, 고치려는 마음 따위는 가지지 않았다.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눈 색을 숨겨야 안 좋은 말을 덜 들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타카나의 눈 색은 은회색이었다. 확실히 흔한 색상은 아니었어도, 중학교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그것이 이상하거나 보기 싫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조금 특별해서 예쁘다고 생각했으면 몰라도. 하지만 중학교에 들어온 뒤부터는 몇몇 아이들이 타카나의 눈을 보며 이렇게 말하고는 했다.
‘네 눈 말인데, 죽은 사람 눈 같아. 귀신 눈.’
‘죽은 사람보다는 흐리멍덩한 게 죽은 생선 눈 같지 않아? 동태눈이라던가?’
타카나는 처음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신경 쓰지 않으려 했다는 말이 정확할 것이다. 그 어떤 말이 귀에 들려와도 듣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오히려 자신감을 가지자는 생각을 하려 애썼다. 하지만 그런 타카나의 모습이 ‘아니꼬운’ 몇몇 아이들이 타카나에게 붙기 시작했고, 바로 이지메에 휩쓸리게 되었다. 타카나의 고개가 숙여지고, 남들의 눈을 바라보지 않게 된 것은 그때부터였다.
*
7월의 더위가 진해짐과 동시에 중학교에서는 여름방학의 소식을 알려왔다. 다른 아이들은 방학 동안에 친구들을 만날 수 없다는 사실에 아쉬운 행사였지만, 타카나에게는 아이들의 비웃음과 이지메를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였다. 담임선생님의 조회가 끝나자마자, 타카나는 누구보다 빨리 교실 문밖으로 뛰쳐나갔다. 누구보다도 더 빨리 학교를 벗어나고 싶었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문을 지나칠 때쯤, 누군가가 타카나의 팔을 붙잡고 그녀를 잡아 세웠다. 타카나는 시선을 살짝 올리고는 팔의 주인을 찾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매우 익숙한 사람이었다.
“아, 그. 사자나미…, 가 아니라. 쥰 군.”
“아-, 이제 타카나 씨가 이름으로 불러주네요. 이전까지는 계속성으로 불렀잖아요? 몇 년 동안 알고 지냈는데도요.”
“아, 아니. 쥰 군이 이름을 부르면 싫어하지 않을까 싶어서.”
“의미를 모르겠네. 이름을 부르는 걸 싫어했으면, 내가 타카나를 이름으로 불렀겠어요?”
“아, 아니겠지? 그런데 쥰…군, 왜 우리 학교 앞에 있던 거야?”
오늘 방학했다면서요, 오랜만에 같이 놀러 가자고요. 쥰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고 보니 중학교에 입학한 뒤로는 확실히 쥰을 볼 기회가 없기는 했다. 딱히 싫은 것도 아니고, 부모님이 늦게 들어오는 날이기도 하니 타카나는 쥰의 말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근처에 카페가 생겼다고 하더라고요. 파르페 좋아했잖아요? 아닌가?”
“아, 파르페는 여전히 좋아해.”
“다행이네요. 그곳의 파르페도 타카나의 입맛에 맞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뭐, 괜찮겠지. 신경 써줘서 고마워.”
딱히 신경 써주는 거 아니니까요, 저 같은 거랑 어울려주셔서 고맙다는 의미라고요? 쥰이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더운데 서 있지 말고 얼른 가자는 쥰의 말에 타카나는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
카페의 안은 바깥과는 다르게 꽤 시원했다. 이쪽에 앉자는 말에 타카나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그것을 끝으로 쥰과 타카나 사이에는 정적만이 흐르고 있었다. 물론 그 정적은 얼마 가지 않아 직원이 타카나 앞에 파르페를 내려놓는 것으로 깨져버렸지만.
“뜬금없는 질문일 수 있는데, 쥰…군.”
“흠. 뭐길래요?”
“내 눈. 많이 이상해?”
“눈? 글쎄요. 이상한가? 한번 나를 봐야 알겠죠.”
“아, 아니. 평소에 어땠냐는 말이야. 내 눈. 쥰 군도 이상하다고 생각해?”
타카나는 고개를 숙이고는 숟가락으로 파르페 그릇의 끝자락을 톡톡 건드리며 물었다. 타카나의 질문에 쥰은 자신의 눈을 봐달라고 답했다. 하지만 타카나는 고개를 저으며, 평소에 봤던 기억을 더듬어 대답해달라고 반복했다.
“아까부터 이상하네요. 급하게 학교를 빠져나온 것부터 교문에서 대화할 때 저랑 눈 안 마주친 것도 그렇고. 이제는 갑자기 눈이 이상하지 않느냐고 묻는데, 내 얼굴을 안 보면 그걸 어떻게 답해줘요?”
“쥰 군도 내 눈을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수 있잖아. 다시 보면 이상한 눈이라고 답하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오늘 할 말이 있었는데, 하지 않는 게 좋겠네요. 이렇게 대화해도 답답할 뿐인데, 먼저 들어가도 괜찮죠?”
“미안해.”
“타카나가 미안해질게 뭐 있어요. 먼저 가볼게요. 다음에 봐요.”
쥰이 타카나를 한번 쳐다보고는 카페를 떠났다. 파르페는 이미 녹아버린 지 오래였다.
*
카페에서의 일 이후로 타카나는 쥰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가끔 메일로 안부를 주고받는 게 전부였으며, 타카나가 알고 있는 사실은 쥰이 레이메이 학원으로 진학했다는 사실과 학원의 특기생으로 유닛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그 소식 외에는 전혀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쥰의 소식을 알기 위해서 레이메이 학원에 간다는 것은 본인이 생각하기에 뻔뻔한 행동과 같을 뿐이었다.
“이번 라이브가 끝나면 보러 가도…, 아. 그러고 보니 이번 라이브 누구와 한다고 했더라.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읽지도 못했어.”
타카나는 피곤한 눈을 비비며 휴대전화의 메일함에 들어가, 라이브에 대한 정보가 담긴 메일을 읽어가기 시작했다. 일주일간같이 레슨한 뒤에 라이브를 진행. 대상은 레이메이 학원의 ‘Eve’.
“레이메이 학원?”
타카나는 자신의 휴대전화에 뜬 글자가 환각이라도 되는 듯, 몇 번이나 눈을 떴다 감는 것을 반복했다. 눈을 비벼보기도 했지만, 그 글자는 환각이 아닌 현실이었다.
“레이메이 학원과 레슨 후 라이브….”
운이 좋으면, 레이메이 학원에서 온 유닛의 사람들이 쥰의 소식을 가지고 올 수 있으리라. 타카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수동적이고 남에게 의지하는 것은 평소에 피했던 행동이지만, 지금의 자신에게는 그것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
일부러 레슨은 보지 않았다. 쓸데없는 말을 하게 될 수도 있었고, 무엇보다 방해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자신 때문에 라이브를 망치는 것은 원치 않았으니 말이다. 라이브 당일, 화려하게 꾸며진 무대를 타카나는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아직 개막의 전인데도 무대의 아래에는 손님들이 가득했다. 곧이어 트릭스타를 포함한 처음 보는 얼굴의 두 사람이 무대 위로 올라와 손을 흔들었다.
“아, 아니야. 한 명은 익숙한데. 머리도, 인상도….”
타카나는 인상을 찌푸려, 무대 위에 있는 익숙한 남자의 얼굴을 보려고 애썼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그게 쥰이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타카나는 머리를 망치로 크게 얻어맞은 듯했다. 지금이라도 무대의 뒤로 달려가, 쥰에게 그때의 사과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또 쥰에게 피해를 줘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타카나는 멀리서 라이브를 진행하는 6명을 바라보기만 해야 했다.
*
라이브가 끝나자마자 레이메이 학원의 유닛인 ‘Eve’는 바로 돌아가야 한다는 소식을 들은 타카나는 휴대전화를 꽉 움켜쥐었다. 열차 시간까지는 대충 30분이 남았으며, 지금 뛰어간다면 20분, 적더라도 10분 정도는 쥰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겠지.
[갑자기 이렇게 말해서 미안해. 할 말이 있어. 열차를 타기 전에 들어줬으면 하는 말이 있는데, 괜찮아?]
타카나는 눈을 꼭 감고는 메일의 전송버튼을 터치했다. 얼마 가지 않아 휴대전화의 알림음과 함께 메일이 도착했다. 당연히 쥰에게서 온 답장이었다.
[아, 잠깐뿐입니다. 역 앞에서 기다리죠.]
*
전력으로 뛰어 역에 도착하자, 타카나는 입구에 서 있는 쥰을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쥰은 자신의 앞에서 숨을 고르는 타카나를 팔짱을 끼고 쳐다보고 있었다.
“중학교 때랑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네요. 뜬금없는 건.”
“미안해. 그래도 얼굴을 보니까 생각난 거랑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하고 싶은 말은 보통 눈을 마주치고 해야 하는데, 여전히 고개를 안 들고 있네요.”
“미, 미안해….”
나 참, 뭐가 그렇게 미안합니까? 쥰은 고개를 푹 숙이며 사과하는 타카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서 할 말이 뭡니까?”
“중학교 때. 여름방학에 내가 쥰 군을 화나게 해버렸잖아. 그거…, 사과하고 싶었어. 나한테 실망했을까 봐.”
“실망했다고 생각한 거라면, 오히려 이쪽이 실망인데요.”
“그, 그게…, 미안해.”
“그 미안하다는 말, 그만 좀 해주세요. 내가 듣고 싶은 건 그런 말이 아니니까요.”
쥰의 딱딱한 목소리에 타카나는 몸을 움츠렸다. 화났겠지. 화났을 거야. 제대로 말하지 못해서 더 실망했겠지. 타카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쥰의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서운했다는 게 더 가깝겠죠. 나한테 그 일에 대해 자세히 말 안 한 것도 그렇고. 그리고 무엇보다 좋…, 아니. 버팀목이 되어주지 못했다는 거에 제가 더 원망스러웠거든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
“그때, 눈을 이상하지 않느냐고 물어봤었죠?”
“응. 그랬었지.”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좋아해요. 바라볼 때마다 마음이 편해지거나 기분이 좋다는 느낌을 받았다고요?”
애초에 사과하지 않았어도 되는 일이었다고요, 그냥 그때 한 번만 내 얼굴 봐줬으면 되는 일인데. 쥰은 고개를 숙인 타카나의 얼굴을 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역 앞에 있는 불빛이 일렁였다.
“저기, 혼자 이런 말 하는 것 같아서 부끄러워 죽겠거든요. 몇 년 동안 못 봤는데, 숙인 모습만 보여줄 거면 그냥 열차 타러 가도 괜찮죠?”
“그런데 지금 눈물이 나는 것 같아서. 보기 싫을 텐데.”
“좋아하는 사람 얼굴을 왜 보기 싫겠어요? 우는 얼굴, 웃는 얼굴 상관 하지 않아요. 이왕이면 웃는 얼굴을 바라지만. 이왕이면 편한 쪽으로 하세요.”
눈이 예쁘다고 했으니까. 이왕이면 환하게 웃는 얼굴은 아니어도 슬쩍 웃는 얼굴이 괜찮겠지. 타카나는 눈에 맺힌 눈물을 닦아내고는 고등학생이 된 쥰의 얼굴을 마주했다.
중학생 때와 비슷하지만 조금 더 어른스러워진 얼굴이 타카나의 시야에 들어왔다.
“…뭐 때문에 그렇게 고개를 숙이고 다녔는지는 모르지만, 타카나의 눈은 제가 좋아하니까요. 얼굴 자주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바람 뿐이네요.”
“노력…은 해볼게. 쥰 군, 아니! 쥰이 내 눈, 예쁘다고 말해줬으니까.”
“지금은 열차를 타러 가야 하지만, 다음에는 조금 더 대화하고 싶네요. 저도 하고 싶었던 이야기, 많으니까요. 다음에 봐요.”
가로등의 불빛 아래에 둘의 그림자가 비쳤다. 두 그림자는 손을 꼭 마주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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