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Text/2017년 7월호

아무 말 없이 우리는 ( 우타프리 - 나나미 하루카 )


 

아무 말 없이 



 

   우타프리 - 나나미 하루카, 륭키하루, 류아키★륭키 )


 
 

 


 

뒷세계라고 흔히 말하는 그곳에서 살다시피 하는 그녀는 어느 조직의 보스다. 이렇게 어디선가 나타난 다른 조직원의 탈이나 총알을 맞는 것도 이곳에선 일상이다. 작고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이런 조직의 보스가 전통 있고 이름만 말하면 벌벌 떠는 큰 조직의 조직원에게 칼을 맞았는가. 짧게 이야기하자면 작고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조직이 알짱거리는 게 거슬렸을 거다.


그것도 보스가 여자니 더 우습게 보였겠지. 점점 피로 물드는 셔츠를 부여잡았다.


일단 그녀는 조직원을 대신해 자신이 칼을 맞은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상대의 조직의 반을 무너뜨렸으니까. 알려지지 않은 조직의 여보스로 인해 알려진 조직의 반이 무너진 것은 뒷세계에선 제법 큰일이었다. 자신의 무기는 조직원이 자 챙겼을 거다. 마무리는 자신이 할 테니 도망치라는 조직원의 말에 알겠다며 피신을 했다.


문제는 지금부터인데. 몸을 피한다고 담을 넘어 들어온 곳은 어느 학교 기숙사인 것 같은데 자세한 건 알 수가 없었다. 어디서 본 것 같고 한번 와본 적 있는 것 같기도 한 곳이었다. 학교 기숙사가 거기서 거기겠지. 이제 죽으려고 주마등이 겹쳐져서 그런가 싶기도 했다. 비틀비틀하다 큰 나무에 손을 얹으려다 미끄러지면서 나무에 머리를 박고 기대면서 쓰러졌다. 품에 안긴 나무를 등지고 돌려 누웠다. 달빛이 너무나도 아름다워 저 자신을 비추는 것 같았다. 이런 건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그녀는 생각했다. 하지만 받으니 제법 나쁘진 않다고 생각했다.


이럴 때 들어야 하는데. 그녀는 그녀가 평소에 즐겨듣던 노래를 떠올렸다. 어느 날 실수로 조직원들 앞에서 틀어진 이 노래는 보스의 놀림거리가 되었지만, 그녀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 후 조직원들에게 뺑뺑이를 시킨 후에도 그녀가 계속 들었던 그 노래. 자신과는 어울리지 않은 그 노래는 항상 그녀 자신에게 힘을 줬다.

 

“듣고 싶다.”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자신을 보며 활짝 웃던 어느 날의 미소에 그녀는 미소 지었다.

 

 

 

그 미소가 정말 아름다웠다. 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 미소를 본 게 언제부터였더라. 처음 만난 게 언제였더라. 상대 조직원들의 시선을 피해 들어간 어느 가게에서 만났던 것 같다. 여름에도 검은 정장을 차려입은 자신을 보며 눈이 마주친 나나미 하루카의 얼굴을. 제 물건을 떨어뜨린 것도 모른 체 가게를 가로질러 곧이어 뒷문으로 도망쳐 나온 자신에게 손수건을 가져다주며 웃는 그 미소가 더운 여름날을 따스한 봄날로 만들어줬던 것을 그녀는 아직도 기억했다. 그 이후로 그 미소를 잊을 수 없어 조직원들에게 그녀에 대한 조사를 부탁했고 그녀가 연예 전문학교인 사오토메 학원 학생이었고 샤이닝 사무소에 들어갔고… 뭐 등등 많은 것들을 알 수 있었다. 그러면서 알게 된 그녀가 작곡한 노래에 대해 알게 되었었다.


물건을 찾아줬다는 것을 계기로 만나 그녀의 미소를 보는 것이 좋았다. 그것만을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버티기도 했다. 그 미소가 보고 싶다. 나나미의 얼굴이 보인다. 등 뒤로 비치는 후광에 눈을 찡그렸다. 언제나 봐도 예쁘구나. 웃음이 난다.

 

“아. 일어나셨어요?”

“하루카 예쁘네.”

“네?”

 

수줍어하는 얼굴도 예쁘다. 손을 뻗어 붉게 물든 뺨을 만졌다. 따뜻하고 부드럽다. 실제로 만지는 듯한 느낌이 들어 볼을 꼬집었다. 볼이 늘어나며 아프다고 중얼거리는 나나미의 대답에 놀라 손을 놓고 벌떡 일어났다. 얼굴은 가까이 있고 빠르게 고개를 든 탓에 턱 소리가 나며 서로의 이마가 부닥쳐 둘은 제 이마에 손을 얹었다. 소리 없는 아우성의 시간이 지나 그녀는 바닥에 쓰러져 제 이마를 문지르는 나나미를 보기 위해 몸을 다시 일으키려다 통증을 느끼고 침대 위로 풀썩 쓰러졌다. 아픈 곳에 손을 뻗어 만지작거리니 붕대가 느껴졌다. 바닥엔 흰색의 작은 대야와 그 안엔 붉게 물든 물이 들어있었다. 아마도 그건 자신의 피다. 그녀는 제 머리를 부여잡았다. 차라리 이 상황이 꿈이었으면.

 

“저…….”

 

나나미의 목소리가 들려오니 그녀는 눈썹을 들썩인 뒤 이불을 꽉 잡았다. 긴장을 하지 않을 수가 없지. 그녀는 눈앞에서 자신을 쳐다보는 나나미와는,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들킨 거라면 입막음을 하면 끝이었다. 나나미에게 만큼은 들키고 싶지 않았다. 입을 열려는 나나미를 보고 이불을 걷어내며 몸을 일으켰다. 나나미 입에서 나올 말이 두려워 도망치고 싶어졌다.

 

“…미안.”

 

도망가려는데 허리를 끌어안는 나나미 덕분에 몸을 멈췄다. 상처 부위가 압박당해 아픈 것도 있었지만 잡을 거라는 건 생각도 못 했기에 얌전히 있었다. 평소 남자들을 상대할 때도 이겼던 자신인데 싸움과 거리가 먼 나나미에게 붙잡히고 가만히 있다니. 아마도 자신이 건들면 어디 하나 부러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나나미의 손 위에 손을 얹어 슬쩍 밀어냈다. 그러자 더 강하게 꽉 잡아 왔다. 그 힘도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그녀는 그만뒀다.

 

“알겠으니까 놔줄래?”

“이유를 묻지 않을 테니 도망가지 마세요.”

“…응.”

 

나나미의 말에 웃으면서 몸을 돌렸다. 내 정체가 누군지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거야. 제 일을 떠올렸다. 말하고 싶지도 않고 들키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언제까지 속일 수도 없다. 복잡한 머릿속에선 여러 가지 생각이 섞여 소용돌이 치는 것 같았다. 무엇을 어떻게 하면 될까. 이토록 소심하게 굴었던 걸까. 자신을 놀리던 조직원들을 한꺼번에 때려눕혔던 것이 떠올랐다.

 

“하루카.”

“네?”

“계속 안고 있을 거야? 날 너무 좋아하는걸.”

“죄, 죄송해요!”

 

빨개진 얼굴로 제 몸에서 떨어지는 나나미에게 괜찮다며 웃고는 침대 쪽으로 몸을 옮겼다. 시트에 묻은 피를 보니 자신의 피겠지 하고 한숨을 쉬었다. 어떻게 말하면서 변상을 해줘야 할까. 사준다고 하면 거절할 텐데. 어디서 당첨 돼서 받은 건데 우리 집 침대 사이즈와 맞지 않아서… 아니지. 침대가 없다고 주는 게 자연스러우려나……. 너무 심각하게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 때문인지 조용히 컵에 물을 받아온 나나미를 뒤늦게 발견했다. 눈이 마주치자 활짝 웃으며 컵을 내밀고 제 얼굴을 양손으로 찰싹 소리 나게 때린 뒤 컵을 받았다. 하루카를 곤란하게 하지 말자고 생각하며.

 

“고마워, 하루카.”

“아니에요. 무슨 고민이 많은가 싶어서요.”

“응. 조금….”

 

대화가 끊겼다. 그녀 본인도 할 말이 없었고 나나미도 더는 무슨 대화로 이어야 할지 모르는 눈치였다. 그렇겠지. 침대 위에 이불 위에 누웠다. 이불이 두꺼워서인지 아까보다 더 푹신하게 느껴졌다. 내가 여기서 자면 하루카는 어디서 자는 걸까. 그녀는 나나미 족으로 고개를 돌렸다. 역시나. 여분의 이불을 바닥에 깔고 있었다.

 

“내가 바닥에서 잘래.”

“네? 제가 바닥에 있어도 괜찮아요!”

“하지만 하루카는 침대가 더 편할테고. 우리 집엔 침대가 없으니까. 바닥에서 자도 돼.”

“저… 그럼 같이 바닥에서 자요! 이불 더 가져올게요!”

 

아니 왜 멀쩡한 침대를 놔두고……. 대답을 할 새도 없이 빠르게 이불을 준비해와 바닥에 깐다. 별수 없나. 그녀는 몸을 일으켜 침대에서 내려와 바닥에 누웠다. 피가 묻을까 조심해서 누워 이불에 묻었나 확인까지 했다. 침대를 등지고 누워 나나미를 쳐다보았다. 웃으면서 수학여행을 온 것 같다며 말하는 얼굴엔 빛이 가득했다. 그러다 아차 하며 벌떡 일어나 불을 끄고 온다. 달빛이 어디선가 들어와 나나미가 안전하게 갈 수 있게 길을 보여주고 그걸 따라와 이불 위에 눕는다. 혼자서 이야기를 하는 나나미의 얼굴은 달빛을 받아 더 사랑스러웠다.


뒷세계 어느 조직 보스인 그녀는 나나미 하루카가 만든 음악을 듣고 힘을 냈다. 자신의 은인 같은 나나미 하루카에게, 그녀가 하는 일은 결코 옳은 일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나나미 하루카를 지키기 위해 뭐든지 하겠다고 맹세했다. 그녀가 뭐든지 원하는걸 할 수 있게 하겠다고.

 

“그래서 너무 재밌었어요!”

 

그녀가 나나미의 손을 잡았다. 순간 놀란 눈을 했지만, 몸을 그녀 쪽으로 돌리며 생긋 웃었다. 이 얼굴을 언제까지 볼 수 있을까. 잡은 손을 나나미의 손가락과 엇갈려 깍지를 꼈다. 엇갈린 손가락의 감촉이 서로 달라 어쩌면 제 손이 거칠다고 느껴져 뺄까 했지만 하루카의 손가락이 너무 부드러워 가만히 있기로 했다. 서로의 웃는 얼굴을 보며 아무 말 없이 우리는 눈을 감았다.

 

 

 

잠에서 깬 그녀는 아니, 잘 수 없었던 그녀는 나나미 하루카를 바라보았다. 같이 눈을 감았지만 두근거리는 소리가 머릿속을 가득 채웠기에 나나미가 잘 때까지 기다렸다가 눈을 뜨면서 슬쩍 깍지를 풀었다.


좋은 꿈을 꾸는 것인지 자면서도 웃는 나나미의 얼굴을 보면서 그녀는 겉옷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자신을 찾는 조직원들의 메시지를 보고는 빨리 가야겠다면서 몸을 일으켰다. 침대 위에 가지런히 개어진 겉옷을 입은 뒤 침대 위 이불을 털어낸다. 팡팡 소리가 작게 들리고 깨지 않게 조심해서 털어낸다.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에 빠르게 고개를 돌리니 잠꼬대였는지 곤히 자는 얼굴이 보여 안도의 숨을 뱉어낸다. 나나미를 안아 침대 위로 올렸다. 느끼지 못하는지 침대 위에서 자신을 등지고 돌아눕는 것을 보고는 그녀는 나나미 하루카와 보내는 하루가 그것이 마지막이 아니기를 바라며 창문 쪽으로 걸어갔다. 마지막으로 잠든 얼굴을 확인하고 창문 밖으로 높이를 확인한 뒤 창문틀을 잡고 밖으로 뛰어내렸다.


바닥에 잘 착지하고 스마트폰을 꺼내 전화를 했다. 다급한 목소리와 괜찮다는 말에 안도하는 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돌렸다. 자신이 뛰어내린 창문 쪽으로.

또 올게. 작게 중얼거리고는 몸을 바로 돌려 뛰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