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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2017년 6월호

넌 나의 미래였다. ( 쿠로코의 농구 - 모모이 사츠키 )


 

넌 나의 미래였다.

 

 

( 쿠로코의 농구 - 코우지마 치아키 X 모모이 사츠키 ) 

  

 

 

 

 

 

 

 

 

 ‘너처럼 상대가 싫다고 하는데도  억지로  하려는 녀석한테  사츠키를맡길 수  없어.’ 

‘나는  좀 더  노력해서  사츠키에게 , 사츠키  옆에 나란히 서도 부끄럽지 않을 그런 남자가  될 거야 .’ 


언젠가 보았던 상황, 들었던 목소리. 그날은 아마 노을이 지는 어느 겨울날의 일이었다. 졸업을 앞두고 많은 남학생에게 고백을 받았던지라  여러 명의  고백을 거절하고 모두가 하교한 시간에  모모이는  자신에게 부담스럽게 다가오는 남학생을 거절했었다. 그런데도  강압적인 태도에 어디선가 나타난  코우지마가  모모이를  보호하듯 남학생의 어깨를 밀어내며 둘 사이에 섰었다. 화가나 끼어들지 말라고  코우지마의  멱살을 잡는 남학생에게  코우지마가  했던 말이었다. 그저 선후배로만 친한  오빠와 동생으로만  지냈던 감정에 새로운 감정이 들어왔다. 


저도 모르게 잠들었다가 자신을 부르던 목소리에  모모이는  눈을 떴다. 


“신타로가  결혼을 하다니. 청첩장을  가져다줬을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믿어지진  않지만 그래도 결혼을 하는 건 사실이니까 둘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네. 그렇네요.” 


그리고는 조금은 어색한 공기가  차 안을  돌았다. 마침 목적지에 도착하니 문을 열고  모모이  쪽으로 다가가 문을 열어줬다. 자느라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정리해주며 갈까 하고  나지막이  웃었다. 모모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코우지마가  내미는 손을 잡았다. 



결혼식이라고  다른 점이  있었다면 작은 해프닝과  이벤트가  다를 뿐 그왼  여느 결혼식과 같이  진행되었다. 코우지마의  손에 쥐어진 부케가 그 증거였으니. 주변에선  조금 전  작은 해프닝을  떠올리곤 하하 호호  웃었다. 코우지마는  신경을 쓰지  않는 척  모모이와  대화를 나누면서 부케는 여전히 그의 손에 있었다.

 
어째서  코우지마  손에 부케가  쥐어진 건가  하면 오늘 결혼식의 주인공인  미도리마와  함께 합동  연주 후  오랜만에  바비올린을  연주하느라 피곤해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신부가 신부 친구들에게 부케를 던지는 순서라  모두  기대를  하고 있었다 . 누가 받을까. 누가 잡을까. 신부가 부케를 던지는 순간, 농구선수의 아내라 그런지 던진 부케가 긴 선을 그리며 날아와 신부들의  손을 쥐나  기재개를  편 뒤  멍청하게  서 있던  코우지마의  얼굴로 안착했다. 얼굴을 맞고 떨어지는 부케를 잡으니 주변에서는 큰 웃음소리와 함께  박수소리가  이어졌다. 


다른 홀의 결혼식장에서 들리는  박수소리에  코우지마는  놀라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결혼식 감상평을  쉬지 않고  이야기하는  모모이의 말을 듣고 내용을 바로 파악해 맞장구를 쳤다. 손에 쥐고있는 부케를  전보다 더 꽉 쥐면서. 


원래는 결혼식 후 데이트를 할 예정이었지만 피곤함에  모모이를  집 앞까지  차로 데려다주고 집으로 왔다. 차를 주차하고 차에 실은 바이올린을  들고 내려  집안으로 들어오니 누나가 자신을 반겨  코우지마는  순간  멈칫했지만, 다시  웃으면서 문을 닫고 들어왔다. 오랜만에 집으로 온 자신을 반겨주며  코우지마가  들고 있는  바이올린 케이스를 들어준다. 


“잘하고  왔어?” 
“어.” 
“결혼식 끝나고  데이트한다고  했잖아?” 
“피곤해서. 오랜만에 결혼식에 갔더니 피곤하네. 바이올린도 오랜만에 잡았고. 신타로가  아니었으면  망신당할  뻔했지.” 


코우지마의  말에 누나는 웃으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부모님은  외출 중 . 바이올린만 두고 지금 혼자서  사는  오피스텔로  가려 했는데 식사를 하라는 누나의 말을 듣고 분명 식사를 하고 왔음에도 알겠다며 뒤따랐다. 이미 식탁은  차려져 있었고  메인인 파스타만  두 개  세팅을 하면서 식사준비는 금방  끝이 났다 . 이렇게  마주 앉아  먹은 게  얼마 만일까 . 누나가 포크를 들어 파스타를 말자 똑같이  따라 했다 . 조용해진 식탁. 파스타를  몇 번  먹다  맞은편에 있던  누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 


“둘은 결혼  안 해 ?” 
“그러게…. 애매하네 .” 
“나 때문이라면  신경 쓰지  말고 해.” 
“어떻게  신경을 안 써 . 다른 사람도 아니고  누나 일인데 .” 
“네가 늦게  프러포즈  할수록 기다리는  사츠키만  힘들어져. 치아키.”


코우지마는  제 누나의 말에  이해할 수  없었다. 오랜만에 만나 대뜸 하는 말이  결혼하라니….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을  한 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그건 누구보다  코우지마  본인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몇 년 전  일이 그를 붙잡았다. 


매일 싸우기도 했지만 그만큼 사이가 좋았던 누나를  코우지마는  좋아했다. 그래서인지 누나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했을 땐 누구보다 기뻐했다. 누나의 행복해하는 얼굴을 보면서  코우지마는 그 행복을 진심으로 축하해줬다. 그곳에 있던 모두가 그 둘을 축하했을 거라고 믿으면서. 둘이 따로 나와서  살 때도  누나 얼굴이  보고 싶어  자주  놀러 갔었다 . 부모님은 매일 여행을 다녀 집이  비어 있으니  행복해하는 누나 부부를 보면서 대학생 졸업반인 자신도 빨리 결혼을 하고 싶다는 마음마저 들었다. 조금씩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일을 하면서  돈을 모을 모으는 것도 하나의 기쁨이었다. 


서약처럼 영원히  함께 할 거라는  그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졸업하고  정식적으로 누나네 회사에 들어가 모델활동을 하면서 어느 정도의 수익을  얻었을 때 , 돈을 모은 돈으로 고른 반지를 가지고 가게 밖으로  나왔을 때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자신을 친동생처럼 챙겨주던 형의 죽음. 신호를 무시하고 달려온 차에 치였다는  말도 안 되는  통화내용에  코우지마는  빠르게 집으로 달려갔었다. 


모델로  활동 중인  코우지마의  일에 지장이 갈가 누나가 부탁해 장례식이 끝나고 나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누나가  사는  집으로 들어오니 형의 짐을 정리하는 누나를 발견했다. 얼마 안 간  행복, 방안을 가득 채운 슬픔, 홀로 남은 뒷모습을 기는 아직도 생생하게  어제 일처럼  기억하고 있었다.



“치아키.” 

“어? 어, 어….”

“누나는  괜찮아. 누나는 치아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네가 행복해야 내가 행복하지.” 

“하지만….”

“치아키 , 너는 착해. 그날 반지  산 거  다  알고 있어 . 프러포즈를  준비하는 것도 알고 있었고. 나 때문에 그 반지를 품에 넣어놓고 다니는 것도  알고 있어 . 치아키. 사츠키에게  상처 주지 마 . 네 진심을 말해. 네가 그랬잖아. 사츠키는  네게….”

 


이어지는  누나의 말에  코우지마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조금의 망설임과 그 망설임을 이겨낸 결심. 누나의 웃는 얼굴에 고개를 끄덕였다. 코우지마를  다시  문 앞까지  데려다줬다. 머리카락까지 세팅을 해주며 누나는 손을 흔들었다. 화이팅 . 누나의 말에 주차된 차 쪽으로 뛰어가면서 스마트폰을 꺼내  모모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놀란 목소리의  모모이  목소리가 들려왔고  코우지마는  약속 장소를 정해 만나자고  말한 뒤  전화를 끊고 운전을 했다.

 


 

약속 장소에 먼저 도착한  모모이가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자신을 보며  활짝 웃는  모모이를  보며  코우지마는  조금 전까지의  결심은  어디로 가고  멈칫하면서 뛰던 걸음이 점점 느려서 걸어갔다. 수그러든 미소, 모모이는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뭔가  큰일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걱정하는  코우지마쪽으로  모모이가  걸어오자  코우지마는  걸음을 멈추고 다가온  모모이에게  품속에 있던 반지가 든 케이스를 꺼냈다. 


여전히 푸른 하늘, 어두운 얼굴, 내민  손엔 반지케이스가 쥐어져 있었다. 모모이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어  코우지마를  불렀다. 다가가 손을 팔에 얹으니  코우지마는  그 손을 잡아  모모이에게  반지 케이스를 쥐어졌다. 


“나에게 있어서  사츠키  너는 하나의 또 다른 미래를 만들어줬어. 너는 나의 미래였어. 그것은 나만의 욕심이라고 생각해 내 마음은 늘 마음속에 간직하자고 했었어. 그 날,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이 나왔고 그런 상황에서도 내 마음을 알아준  사츠키  네게 고마웠어.” 


코우지마는  눈앞에서  당황한 표정을  하는  모모이를  보니 과거의 일이 떠올랐다. 분명 그때도 얼굴을  직접 보진  못했지만 제 등 뒤에서 똑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을 하면서 그때를 떠올렸다.


“최근에  누나 일도  있었고 사람의 일이  알 수 없으니  만약 그날, 그때처럼  그런 일이  일어날까 봐  나는 너무 무서웠어. 그래서  줄까 말까  엄청 고민했어. 이걸 네게 줘도 되는 걸까.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 걸까 . 나 같은  사람이 네 옆에 있어도 되는 걸까.” 


너와  사귀기 전 , 말했을 때의  나는 지금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는데….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옆에서 자신을 위해 노력하는  모모이가 보였지만 자신은 늘 한결같이 행동하고 오히려 자신이 더 힘들다고 생각하면서 늘 피해왔다. 결혼이라는 것으로  모모이를  힘들게 하지 않을까. 누나의 일이 생각났다. 슬픔과 울음과  모든 감정이  뒤섞여 힘들어하던 그 모습을 자신은 그저  어쭙잖은  위로도  할 수  없어 옆에  있어 주기만  했다. 


그런 내가 만약 사라지면, 사츠키가  먼저 사라진다면. 나 혼자서 너 혼자서 잘  견뎌낼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하고 있던  자신에게 이렇게 고백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준 누나의 얼굴이 떠올랐다. 자신을 이렇게  모모이에게 , 모모이  앞에  설 수 있게  해준 활짝 웃는 누나의 얼굴이. 


“그래도…. 이런  내가  괜찮다면…. 사츠키가  괜찮다면…. 나의  미래가 되어줄래?” 


겨우  입 밖으로  꺼낸 말. 자신이 생각한  프러포즈는  이런 게  아니었다. 멋있게 누구보다  모모이를  행복한 얼굴을  할수있게  해주고 싶었다.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또는 영화관을 하나  빌리…. 는 건  무리였겠지만. 근사하고 멋있게 해주고 싶었는데. 후회가 밀려온다. 차여도 상관없다. 아니. 차이면  슬플 것  같다. 


“저야말로….” 

“어 ?” 

“저야말로…. 코우지마  선배의 옆에 있어도 되는 걸까. 항상  생각했어요 . 항상 저를 위해 면하고  노력해준  선배인데. 제가 같은 성을 나눠 받아도, 그런 자격이  있을까 하고요 . 선배만  괜찮다면  저도 괜찮아요.”

“라는 건….”

 


동그랗게 토끼처럼 눈을 크게 뜬  코우지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얼굴이 붉게 물든  모모이의  얼굴을 보고 점점 윗니와 아랫니가  부딪히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입술이 떨리고 크게 뜬 눈에선 점점 눈물이  가득 차  넘쳐 밖으로 흘러나왔다. 이 장면을 어디선가 본 장면이었다. 둘이 사귀기  시작했을 때 . 고백을 받고  응했을 때였다 . 코우지마가 고맙다며 울면서 자신의 손을 붙잡았던 그때. 자신이 달래주며 웃기까지의 그 짧은 순간도  모모이에겐  작은 즐거움, 행복이었다. 그때처럼 손을 뻗어  뒤꿈치를  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쓰다듬는다고 해도 거의  앞 머리카락이  닿는 쪽이었지만. 


모모이는  쓰다듬다가 자신의  앞에 있는  큰 몸을 보았다. 훌쩍이며 들썩이는 어깨는  어린아이 같아  보이기까지 했다. 쓰다듬던 손을 거두고  두 팔 벌려  꼭 안아줬다. 따뜻한 온기가 조금은 춥다고 생각한 바람으로부터 몸을 감싸  안아주는 것  같았다. 실제로도 어느새  코우지마의  두 팔이  자신을  감싸 안았다 . 


아까의 떨림은 멈춰있고 고맙다고 반복되는 말만 이어져 고개를 들어 눈이 마주치니 그제야 말이 멈춰 빨개진 눈으로 환하게 웃는다. 평소에도  웃었지만, 평소와는  다르다고 느껴지는 웃음에  모모이는 그 웃음을 본 자신의 얼굴이  빨개진 것을  들키기 부끄러워 얼굴을 품에 파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