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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2017년 6월호

넌 나의 미래였다. ( 트럼프 - 체르타 )


 

넌 나의 미래였다.

 

 

( 트럼프 - 체르타, 체르시오 )

  

 

 

 

 

 

 

 

 

 시오는 늘 꿈을 꾸고는 했다. 꿈의 내용은 자신도 잘 아는 것이다. 자신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당하는 꿈을 꾼다. 사람의 얼굴이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누구인지 잘 안다. 그 사람들에게서 가해지는 폭력은 얼마 없다. 왜냐하면 자신을 잡은 손이 감싸주기 때문이다. 그게 시오의 일상이다. 그리고 그 꿈은 일상이다. 일상에 고통 받는 일은 없다. 하지만 일상이라며 아프지 않은 것도 아니다. 아픈 과거를 당당히 본다는 건 맞서 싸울 용기가 있거나 고통이 익숙해져 덤덤해졌다는 뜻이다. 시오도 그렇다. 익숙하다, 그리고 아프지 않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녀는 후자이기도 하다. 울컥하는 마음이 치솟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달래기도 한다. 즉 꿈은 괴롭지만 덤덤하게 바라볼 만큼 무뎌졌다는 뜻이다. 그래서 꿈을 꾸면 덤덤하게 샤워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진짜로 아무렇지도 않다는 뜻은 아니다. 무뎌졌지만 저도 감정이 있다. 감정이 있다는 건 아프고 지친다는 의미도 된다. 이미 지쳐서 삶의 의미가 무뎌졌다. 그럴 때마다 도움을 준 건 여하단이다. 시민을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는 여하단. 하지만 쓸모는 없었다. 그들이 나쁜 게 아니었다. 자신을, 그리고 자신의 손을 잡아준 사람에게 폭력을 가한 사람이 돈이 많아 변호를 잘하는 사람을 모시고 그게 아니더라도 증거가 없는 탓이었다.

‘넌 나쁜 년이야, 태어나지 말았어야만 했어.’
‘왜 태어났어?! 너 따위 죽어버려!’

 열 살의 자신. 그리고 지금은 삼백 살이 넘은 자신은 지금도 꿈을 꾸고는 한다. 눈물을 흘리고는 한다. 지키지 못해서 미안해, 지키지 못해서 미안해. 자신의 손을 잡아준 사람에게 사죄를 하고도 한다. 그리고 더욱 사랑받기 위해 노력도 한다. 여하단장, 체르타. 이름을 끝까지 말 한 적은 없다. 귀신들이 막아서 그렇다. 볼 수 없는 걸 보는 건 죄악이다. 이미 몇 번이고 죽은 목숨이기 때문이다. 구역질이 난다. 미래는 어둡다. 그리고 과거는 더 어둡다. 여하단장을 보면 늘 구원받는 느낌이 들지만 지금은 그런 걸 상상할 수는 없다. 사랑한다는 감정은 제게는 멀다. 이 감정도 뒤틀린 사상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자신은 사랑한다고 칭할 수밖에 없다.

 자신이 절대 정상일리는 없다. 적갈색 머리칼을 꼬며 상상한다. 자신은 그렇다. 정상인 사람이 절대 이런 감정을 지닐 리가 없다. 그런 자신은 여하단장을 생각했다. 푸른 눈, 은색 눈. 아름다운 사람. 그리고 자신의 감정에 답을 해주지 않는 매정한 사람. 그리고 유일하게 살라고 말을 건네어주고 삶에 살아간 목표를 준 여하단장이다. 미래를 줬다. 그래서 미래를 주고 싶었다. 미래를 주었기에 자신도 미래를 주고 싶었다.

 여하단장. 시오는 이름이 아닌 직위를 불렀다. 여하단장, 참으로 두근거리는 이름. 시오는 침을 꿀꺽 삼켰다. 좋아하는 사람. 사랑한다는 감정을 말하여준 사람. 저를 향해, 미래를 준 사람. 당신에게 고하고 싶다. 당신은 나의 미래다, 내 미래는 당신이 그려주었다. 살아감으로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살아가게 해주었다. 그래서 자신의 미래를 주고 싶다, 내 미래 속에는 당신이 있다. 시오는 웃음을 억지로 지었다. 여하단장이 그려놓은 미래는 오로지 나락일 것이 틀림없지만 여하단장과 함께라면 두렵지 않다. 깊은 신뢰나 믿음이 아니다. 오로지 사랑이라는 감정이다. 고위험군 마나 소유자에게는 오로지 불법인 사랑을 준 사람. 시오는 여하단장을 생각하며 웃음을 지었다. 행복해지는 기분을 좋아한다, 당신을 바라보는 난 이렇게 행복하다. 미래는 오로지 나락일지라도·따른다. 그게 시오의 정의였다. 여하단장, 저를 향해 웃어주는 사람. 가슴이 간질거린다.

 이걸 기꺼이 연모(戀慕)라고 칭한다. 시오는 자신의 사랑에 종말을 고한다.

“……좋아해.”


 답해주지 않는다. 예상하고 있는 결과다. 하지만 이 고백으로도 오늘을 살아갈 힘이 있다.


“좋아해요, 단장.”


 이 말도 답을 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내일도 살아갈 힘이 있다. 시오는 은빛 눈을 접으며 웃었다. 알고 있다. 저는 화를 낼 처지가 아니다. 그를 향한 마음은 접는 게 옳다. 하지만 옆에서 웃을 수 있는 미래를 꿈꾼다. 부부까지 아니어도 좋다. 연인이 아니어도 좋다. 지금은 벗으로써도 좋다. 그의 미래에 있는 자신을 꿈꾸지만, 부하 직원과 상사, 아니면 벗으로써는 꿈꾸기 싫다. 좋으면서도 싫다. 자신이 부정당하는 미래는, 정말 싫다.


“……시오.”


 저를 향해 손을 뻗고는 조용한 눈으로 바라보는 여하단장의 시선을 당당하게 바라보았다. 두근거리는 사람. 잔인하다. 잔인한 사람. 몸을 숙여 의자에 앉아있는 여하단장을 끌어안았다. 저보다 약 15센티나 큰 여하단장을 안았다. 손길을 피하지는 않는다. 이용할 상대를 향한 이정도의 대가없는 애정은 받아줘도 된다는 건가. 생각해보니 분하다. 그래도 좋다. 업무 시간이 아니고, 볼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도 이름을 불러줬다. 웃음이 나온다. 당신은, 너무 상냥한 사람이다. 잔인하고도 상냥한 사람.

 시오는 웃음을 지어낸다. 사랑은 사람을 살아가게 만든다. 미래를 그리게 만든다. 시오도 그렇다. 체르타로 인해 미래를 그렸고, 체르타로 인하여 살아간다. 당신이 있는 미래는, 두렵지 않다. 당신이 거두어준 목숨을 당신을 위해서 버리기 보다는 당신을 위해서 살아가기 위해 당신을 본다. 체르타는 시오의 미래였다. 그 어느 누가 알 수 없는 사람이라고 하여도 자신에겐 상냥했다. 만일에 다시 목숨을 가져간다면 죽을 준비도 되어있다. 체르타를 위한 장난감. 그걸 자신이 자처하고 있다. 시오는 웃음을 흘려내었다.


“당신은 나빠요. 내가 얼마나 간절한지 알면서 외면하는 것도 아니고, 알면서도 침묵하다니.”
 ……그래도, 난 당신을 좋아해요. 미래를 그려보고 싶었어. 세상에 버림받은 날에 죽으리라 예상했어. 당신이 날 살려줘서 살아갈 수 있어요. 꽉 끌어안았다. 여하단장이 좋다, 여하단장이 하는 일은 더 좋다. 누군가를 구원해주는 일은 여하단에서도 할 수 있다. 자신에게는 여하단장이 필요하다. 여하단장은, 자신에게 있어서 미래다. 여하단장을…… 사모한다. 여하단장을 사모하여 여하단장에게 죽어도 좋다. 여하단장은 자신의 약점이다. 여하단장을 위해, 자신은 죽을 수도 있다. 시오는 환하게 웃었다. 여하단장에게 지은 미소 중 가장 밝다. 가장 순수한 웃음이다.

 단장님, 당신은 아시나요. 내가 그린 수많은 미래 중 가장 행복한 미래가 당신이라는 걸. 당신에게 죽음을 당하여도, 당신과 살더라도, 당신 앞에서 죽더라도 당신이 보는 곳이라면 가장 행복한 미래는 전부 다야. 여하단장이 그만큼 소중했고 중요했다. 여하단장이 없는 삶은 이미 과거가 되었다. 여하단장과의 삶은 미래다. 만일에, 그가 자신을 영원히 봐주지 않는 삶도 좋다.


“좋아해요, 단장. 누가 뭐래도 난 진심이에요. 난 좋아해요.”


 당신은 내 마음 모를지라도 나는 당신 마음을 잘 알아요. 안고 있던 두 손 중 한 손 떼더니 그 손으로 제 옷자락 쥐었다. 그는 상냥한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은 뭐라고 욕을 할지 몰라도 제게는 셀 수도 없이 많이 소중하다. 주군, 그리고 은인. 좋아하면 안 된다는 걸 잘 자각을 하지만 좋아하는 건 어쩔 수 없다. 잔인하다, 잔인하다. 제 옷가지 잡은 손 조용히 뻗어 여하단장을 잡는다. 아득한 사람. 닿고 싶어도 닿지 않는 것만 같은 사람. 그 사람은 그렇게 시오, 자신에게 상처 입힌다. 그럼에도 좋아하는 자신은 잔인하다. 체르타, 체르타. 불러서는 안 되는 이름을 부른다. 아늑해지는 이름에 편안함 느끼고 떨어진다. 좋아한다고 고백을 해본다. 단장님, 단장님. 슬 웃었다. 평화로운 날이다. 악몽도 좋다. 그를 만날 수 있는 계기는 다 좋다. ……선한 게 아니다. 그만큼 단장이 좋다는 거다. 빙그레 눈웃음 짓는다. 좋아해요, 단장. 나름 진심이었다. 얼마 없는 진심 속 거짓 섞이지 않은 진실.

 미래는 맑다. 시오의 미래는 맑다. 오래 전부터 정해왔다. 사랑한다, 자신의 미래는. 그렇기에 조금 더 숨 내어본다. 살아가본다, 여하단장에게 진심 비춰본다. 웃음 맑게 짓는다. 여하단장은 잔인한 사람. 그만큼 소중한 사람이다. 삶을 꾸역꾸역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말해줬다. 여하단장은, 사랑한다는 감정 이전에 은인이다. 시오는 환하게 웃었다.


***


“단장님.”
“응.”
“시오 누나가 좋으세요?”


 히아센 엠은 여하단장에게 물었다. 궁금증이다. 시오 누나는 수 없이 들이대는데 싫다거나 좋다거나 반응을 안 하신다. 그래서 궁금해져서 물어보는데, 여하단장 얼굴이 그다지 밝지는 않다. 원래도 밝은 분은 아닌데 이번엔 즐거워보이진 않으시다. 고독, 슬픔. 히아센은 조용히 여하단장의 답을 듣지 못했다. 시오 누나에 대한 답은 피하신다. 일부러 무시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듣지 않는 것인지. 그리고 시오 누나를 단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여하단 내에 암암리에 소문이 퍼지기 직전이다…. 라기 보다는 그 사람이 자신을 질투해서 힘들다. 단장님하고 자신은 어차피 그렇고 그런 사이가 아닌데!

 저기, 시오 누나. 히아센은 시오를 붙잡았다. 왜 나를 무시하세요?! 따지고 싶다……. 히아센은 침착하게 숨 내뱉었다. 누나, 시오 누나. 단장님을 좋아하세요? 라는 순간 괜히 물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사람 얼굴이 붉어지는 여자를 보고는 하, 비웃음을 날리며 지나쳤다. 그 사람이 뭐가 좋다고! 씩씩대며 공부를 마저 하러 갔다.

 …… 들킨 거지? 시오는 얼굴이 붉어진 게 가라앉지 않고는 히아센이 사라진 장소를 바라봤다. 나 바보인거지? 얼굴 붉어지더니 고개 푹 숙였다. 바보 같아도 좋은 건 좋은 거다. 여하단장은 특별한 의미다. 자신이 살아간다는 의미인데, 전혀 부정할 수 없다. 자신에게 미래를 준 사람이다. 여하단장, 당신은 나의 미래다. 시오의 미래다. 당신은 제가 살아있다는 흔적이다. 이런 시오는, 여하단장을 깊이 사모한다. 숨 막히도록 사모하여 여하단장의 미래를 안고 싶다. 이게 비록 욕심이랄지도 여하단장을 깊이 안아주고 안기고 싶다. 숨 막히게 행복한 일상은 늘 그렇듯 종말을 고하지만 좋다. 여하단장은, 누가 뭐라고 해도, 여하단장을 사랑하는 건 범죄라고 해도 미래를 앗아갈 수는 없다. 미래를 기껏 찾았으니 이제는 빼앗기기 싫어졌다.

여하단장을 좋아하는 건 죄지만 그로 인해 행복해지는 건 절대 죄가 아니다. 시오는 웃음을 피워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