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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2017년 5월호

손 끝이 닿은 순간 ( 하이큐 - 카게야마 토비오 )

 

손 끝이 닿은 순간

 

 

( 하이큐 - 카게야마 토비오, 카게모모 )

 

 

 

 

 

 

 

 

 

 

 

이 날은 유난히 낮 기온이 높은 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육관에서는 계속해서 발자국 소리와 공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사이에서 한 소녀는 어느 소년을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잘 볼 수 없는 은하수와 별똥별을 보는 것처럼 말이다. 초점을 계속해서 맞추고, 눈을 깜빡이고,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소년이 뛰는 모습, 도움닫기를 하는 모습, 공을 어디로 올려야 할지 고민하는 모습, 집중하는 모습. 그런 모습들을 소녀는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소년을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었다. 다른 누군가가 보았더라면 흔히 말하는 엄마 미소를 지을 것 같은 모습으로 말이다.

소녀는 소년의 모든 게 좋았다. 검푸른 빛의 쭉 뻗은, 짧은 머리카락도. 바라보고 있으면 빠져들 듯한 눈빛도 말이다.

 

연습 중간 쉬는 시간에, 소녀는 누구보다 먼저 소년에게 달려갔다. 한 손에는 수건을 들고, 한 손에는 에너지 드링크를 들고서는. 원래는 제 친구인 야치가 해야 할 일이었겠지만 배구부 일손을 도우러 온 이상 저도 빈손으로 마냥 놀고만 있을 순 없었다.

 

 

“토비오!”

“어, 모모 상.”

 

 

잠시 한 숨 돌리고 있던 소년은 후다닥 뛰어오는 소녀의 모습에 살짝 웃음을 지어보이고선 소녀의 손에 들린 수건과 에너지 드링크를 가져갔다.

 

“고마워, 모모 상.”

“으응! 뭘. 힘들진 않아?”

 

 

그냥 그렇지. 무미건조하게 말하며 땀을 수건으로 닦고선 가져온 에너지 드링크를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그와 반대로 소녀는 왠지 오늘따라 조금 더 긴장되는 기분이었다. 소년과 함께 있으면 언제나 제 심장이 터질 듯 뛰어왔지만 오늘은 더 한 기분이었다. 소년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제 귓속을 맴돌아 귀가 빨개지기도 했으며, 말을 조금 더듬기도 하고, 소년과 시선을 마주하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돌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부각되는 부분은 아니었기에 소년은 눈치를 채지 못했다. 소녀는 눈치 채지 못한 소년을 알기라도 한 듯 다행이라며 속으로 깊은 숨을 내뱉었다. 곧 소년이 돌아가고, 소녀는 후우. 하고 다시 깊은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은 후에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소년을 지켜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오늘 소녀가 이렇게나 긴장 아닌 긴장을 하게 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처음으로 소년에게 데이트를 신청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거의 매일 등하교를 함께 하긴 했으나 그래도 소년과 시내에 나가서 평범한 연인들이 하는 것처럼 서로 영화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소녀는 한참을 스스로 다짐하며 소년을 바라보다 갑작스레 몰려오는 피로감에 잠시 눈을 감았다.

 

 

“모모코!”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허억! 하고 숨을 들이키며 일어나니 그 곳엔 제 오빠인 스가와라 코우시가 있었다. 아. 뭐야……. 괜히 툴툴거리며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 새 연습이 끝난 건지 부원들은 모두 사라져 있었다. 어, 난 분명 잔 적이 없는데?! 당황한 소녀는 잠시 얼음이 된 듯 멈춰 있다가 제 오빠를 향해 고개를 들고 물었다.

 

 

“오빠, 토비오는?”

 

 

일어나자마자 남자친구를 찾는 거냐며 잠시나마 툴툴거리던 오빠는 이내 웃으며 부실에 있어. 라고 답했다. 응! 하고 급히 답한 후에 소녀는 일어나 부실로 향했다.

 

부실 앞에 도착했지만 평소에 부실 안으로는 들어가 본 적도 없는 소녀는 한참 동안이나 머뭇거렸다. 그러다 노크를 할까, 아니면 그냥 들어가 볼까 고민하다가 소녀는 노크를 하는 쪽을 선택했다.

 

 

“후우…….”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내쉬고, 후. 문에 손을 대고…….

 

 

“모모 상?”

“악!”

 

 

갑작스레 열린 문에 반사적으로 쭈그려 앉아 무릎을 끌어안고 있다가 저를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어. 소녀의 얼굴이 즉각적으로 붉어지기 시작했다. 이게 뭐야. 부끄러운 것인지 소녀는 치마를 살짝 손으로 털고서는 고개를 숙이고 일어났다.

 

 

“여기 무슨 일이야?”

“어, 어. 그러니까! 내가……. 할 말이 있어서!”

“할 말?”

 

 

뭐라고 말해야 하지? 같이 데이트하고 싶다고 해야 하나? 같이 시내에 나가고 싶다고 해야 하는 건가? 소녀의 머릿속은 마치 엉켜버린 실타래처럼 뒤죽박죽 엉켜있었다.

 

 

“어, 어……. 그러니까!”

“?”

“고, 곧 오빠 생일이라서! 같이 생일 선물 사는 것 도와주러 시내 나랑 나가줄 수 있나 해서!”

 

 

아, 이게 아닌데! 소녀는 말을 내뱉고서도 한참을 후회했다. 6월 13일, 곧 다가오는 제 오빠의 생일을 기념해 줄 선물을 사러 가자는 말을 하자니! 이때까지 아무리 같이 많이 다녔다고는 하지만 엄연히 첫 데이트인데! 이런 핑계를 대다니……. 소녀는 당당히 말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하지만, 소년은 한참을 소녀를 바라보다 살짝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응. 스가와라 상 선물 사드리게?”

“……. 어, 어!”

“가자.”

 

 

눈을 맞추고 살짝 웃다가 소년은 먼저 한 발자국 움직였다. 그리고 뒤를 돌아 소녀와 발을 맞춰 함께 걸으려 소녀를 기다렸다. 소녀는 그에 얼굴이 한껏 붉어졌다가도 고개를 얕게 끄덕이고는 재빨리 발을 움직여 소년의 곁으로 향했다.

 

 

 

 

해가 조금씩 져 가고는 있다지만 그래도 더운 날씨였다. 시내에 나와 무엇을 살지 제법 진지하게 고민하며 둘러보던 그 때, 소년의 손이 가리킨 곳은 마파두부가 담긴 그릇을 든 인형이었다.

 

 

“스가와라 선배. 마파두부 좋아하시지 않아?”

“오빠? 음. 어. 맞아!”

 

 

저걸 어떻게 용케 찾았지? 진짜 마파두부라도 되는 냥 귀여운 인형이 들고 있는 그릇 안에 담겨 있는 마파두부는 꽤나 실제 같았다. 유리 너머로 한참을 함께 들여다보다가 가게 안으로 들어가 그 인형을 찾아 한 팔에 꽉 껴안은 후 다른 인형들을 살펴봤다. 다양한 인형들이 소녀와 소년을 반겨주는 듯 저마다의 표정으로 진열되어 있었다. 귀여워, 속으로 짧게 말하고선 인형들을 살펴보고 있는데 제 남자친구와 똑 닮은 인형을 발견하고선 웃으며 인형을 꺼내 들고 소년에게 외쳤다,

 

 

“토비오!”

“? 왜 그래, 모모 상.”

“여기 와 봐!”

 

 

소녀보다 조금 더 멀리 있던 소년이 소녀의 목소리에 급히 소녀의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걸어왔다. 어, 어? 하며 소녀의 손에 들린 인형을 한참동안이나 바라보다 왜 불렀어? 라고 물었다.

 

 

“이 인형, 토비오랑 닮았지 않아?”

“……. ?!”

 

 

소년은 당황한 듯 꽤나 얼굴이 붉어졌다. 어, 어. 토비오 얼굴 붉어졌다. 헐. 소녀는 속으로 감탄사 아닌 감탄사들을 내뱉으며 낮게 웃었다. 토비오 너무 귀엽잖아! 홀로 곱씹고는 인형을 다시 한 번 바라봤다. 음. 아무리 봐도 닮았단 말이야. 혼자 픽 낮게 웃고는 고장 난 로봇처럼 보이는 토비오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뒤에 소년과 소녀는 함께 다른 인형들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진열대에 가지각색 각각의 개성을 가진 인형이 놓아져 있는 모습은 꽤나 볼만했다. 그러다 갑자기 소년이 한 진열대 앞에서 멈춰 섰다.

 

 

“어, 토비오. 왜?”

“어……. 모모 상.”

 

 

이거, 모모 상 닮았지 않아? 아까 소녀가 한 것처럼 인형을 소녀 쪽으로 꺼내들고 말했다. 그 인형은 토끼가 당근을 꼬옥 쥐고 있는 모습의 인형이었다. 순간 소녀는 소년을 향해 올려다보다가 얼굴이 펑, 하고 터질 것처럼 붉어졌다.

 

 

“아, 아……. 아니거든?!”

 

 

볼이 퍽이나 붉어져 고개를 숙이고 제 손으로 제 뺨을 붙잡고 얼굴을 식히고 있는 소녀의 모습은 꽤나 귀여워 소년의 입 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귀여워. 소년 홀로 생각하고 인형과 소녀를 번갈아 보며 웃었다.

 

 

소년과 소녀는 조금 더 인형가게를 둘러보고 난 뒤에, 함께 계산대로 향했다. 소녀는 계산하고 나갈 테니까 먼저 나가있으라며 소년에게로 말했다. 그에 소년은 알겠다며 잠시 가게 바깥으로 나가 있었다. 그 새 소녀는 아까 보았던 소년과 닮은 인형이 있던 곳으로 가 그 인형을 하나 집고선 제 오빠에게 줄 인형과 함께 꽉 껴안고 다시 계산대로 향했다.

 

그 사이에 소년은 소녀 몰래 다시 인형 가게로 들어가 소년 또한 아까 보았던 그 인형을 집어 들고 다시 계산대로 향했다. 소녀보다 조금 더 빨리.

 

소녀는 계산을 끝마치고 소년에게로 재빨리 향했다. 제 오빠에게 줄 선물은 한 손에 꼬옥 쥐고, 그리고 제 남자친구를 닮은 인형은 손에 꼬옥 쥔 채로 등 뒤에. 소녀는 소년을 바라보며 밝게 웃고는 토비오! 이름을 부르며 소년에게로 향했다. 오래 기다린 건 아니지? 소년을 향해 바라보며 소녀는 밝게 웃어 보였다.

 

곧 소년과 소녀는 함께 걷기 시작했다. 소녀는 언제 이 말을 꺼내야할지 망설였다. 토비오를 위해 샀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았고, 그냥 선물이라고 건네기엔 제 딴엔 이상했다. 소년도 그랬다. 소년도 자신의 뒤에 소녀를 꼭 닮은 인형을 하나 들고 있었다. 뭐라고 하며 이 인형을 건네줘야 할까. 고민으로 가득 차 있을 때. 소녀가 먼저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토비오, 오늘……. 같이 와줘서 고마웠어!”

“뭘, 별 거 아닌데…….”

 

 

웃음 가득한 대화 속에서 소녀가 갑자기 말을 멈추고 우물쭈물, 말을 멈췄다가 하려다가를 반복하다가, 소년이 다시 먼저 말을 건넸다.

 

 

“모모 상.”

“응?”

 

 

소년을 바라다보며 소년의 말을 기다리던 소녀는 곧 소년의 손에 들려 있는 것에 의해 얼굴이 마치 딸기처럼 붉어졌다.

 

 

“그러니까, 모모 상이랑 닮아서……. 선물 주고 싶었으니까.”

“……. 어, 사실은…….”

 

 

머뭇거리던 소녀가 자신의 허리춤 뒤에서 손으로 꼭 쥐고 있었던 인형을 꺼내 들었다.

 

 

“나도 토비오 닮은 인형 주고 싶어서.”

 

 

그래서 나도 사왔어. 라고 말하고 소녀는 부끄러운지 고개를 조금 숙이고 소년에게로 손을 인형을 꼬옥 붙잡은 손을 내밀고 있었다.

둘은 서로와 닮은 인형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한 손에는 인형을 꼬옥 쥐고, 안쪽 손은 서로를 향해 손을 잡았다. 손끝이 닿은 순간 소년과 소녀는 마치 둘만 다른 세계에 와있는 것처럼, 둘만의 세계에 와있는 것처럼. 그 번화한 거리에서 서로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고 생각했다. 맞잡은 두 손이 둘 다 열기로 따뜻했다. 아니, 어쩌면 뜨거웠다. 심장이 화르륵 손을 통해 이동하고 있는 것만 같다고 느꼈다. 손도 잡아본 적 없었던 둘은 손만 잡았을 뿐인데 심장이 쿵, 쿵. 하고 미친 듯이 뛰어댔다. 터질 것 같았다고 아마도 둘 중 누군가 한 명은 생각했을 것이다. 둘은 그런 두 손의 끝이 맞잡는 순간부터 서로의 손 사이로 깍지를 낀 지금 순간까지 서로의 열기가, 심장 소리가 느껴지는 것만 같아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도 같았다. 손을 꼬옥 잡고서 둘은 너나할 것 없이 서로를 바라보고 그저 활짝 웃었다. 소녀는 아주 활짝, 소년도 웃었다. 웃고서 둘은 손을 놓지 않을 거라는 듯이 꼭 붙잡고 번화가 길 사이를 걸었다.

 

그 날은 소녀에게도 소년에게도 특별한 날로 기억되고, 회자되고 있다. 그 순간부터 집에 바래다주는 그 순간까지 손을 놓친 적이 없었다. 특별히 할 일이 없었음에도, 할 일을 모두 끝마쳤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번화가 주위를 돌면서 말이다. 소녀는 오빠의 선물을 더 살 것이라며 번화가를 좀 더 돌아다니며 소년과 함께 웃었고, 소년은 그런 소녀가 귀엽고도 예뻤다. 함께 무엇을 살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했다. 그렇게 할 일을 다 했음에도 불구하고, 소녀와 소년은 더욱 더 함께 있고 싶어 했다. 그래, 손끝이 맞닿은 순간부터 소녀와 소년은 제 둘을 놓을 수 없게 되었다.

 

 

 

온 우주를 비해도

모자람이 없을 사람아.

 

나는 멀찍이 네가 보이는

이 거리마저 사랑해.

/향돌, 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