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연
( 전각 나이트 블러드 - 타케다 신겐/우에스기 켄신/다테 마사무네, 리나, TORORE )
꿈에서 종종 만나는 이가 있었다.
「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버텨줘서 고마워요…. 살아있어줘서… 고마워요…. 」
독특한 복장에, 이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분위기를 휘감고 있던 누군가는, 이제 끝이라고 생각해버린 나를 애타는 목소리로 끊임없이 불렀고 눈을 떴을 때에는 눈물어린 표정으로 연신 고맙다는 말을 내뱉었다. 그건 나에게 건네는 말이 아닌, 그저 반복적으로 중얼거리는 것에 지나지 않았으나 어째서인지 그 작은 어깨를 끌어안아 위로해주고 싶다는 기분이 들었다.
「 켄신님─!! 」
이윽고 병사들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그녀는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너는 정말 꿈이었을까.
* *
“ 켄신님! ”
잠시 회상에 잠겨있던 켄신은 병사의 목소리에 현실로 돌아왔다. 총대장이라고 하는 자가 전장에서 딴 생각을 하다니, 그는 자신을 속으로 크게 질책하고는 부하를 돌아보았다.
“ 수상한 자를 붙잡았습니다! ”
“ 수상한 자? ”
“ 예! ”
어디의 첩자라도 붙잡은 건가 생각하던 켄신은 부하가 데리고 온 사람을 보자마자 숨이 멎을 뻔했다. 얼굴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아도, 목소리는 이제 희미해져버렸을 지라도 켄신은 그녀가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보았다.
“ 켄신님? ”
타케다군과의 이번 전쟁에서 소기의 목적을 이미 달성한 켄신은 전(全)군에게 후퇴 명령을 내렸고 ‘수상한 자’는 그대로 우에스기군의 성으로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녀에게 도착하자마자 왜 전쟁터에 있었는지, 부하에게 어떻게 붙잡혀온 것인지를 물어보았다.
“ 누구를 만나러 가다가 쓰러진 사람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치료하고 있었다고? ”
굉장히 의심이 가는 이야기였으나 그녀는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다. 실제로 신겐의 병을 정기적으로 살피기 위해 타케다군에 방문하던 와중, 전쟁이 벌어졌고 사람들을 치료하다가 수상하다고 여겨져 끌려온 것이었으니까.
“ 누구, 라는 것은 신겐인가? ”
“ ……네.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입니다. ”
신겐의 병이 우에스기군에게 알려질 것을 우려한 그녀는 사족을 붙였다. 의사가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이유가 환자를 만나기 위해서만은 아니겠지만 그대로 예, 아니오 같은 대답만 한다면 더 부자연스러울 것 같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역시 거짓말은 아니었다. 이번에 신겐을 만나러 가는 것은 정해진 약속대로 가는 게 아니라 예고 없이 들이닥치던 중이었으니.
“ 모두는 들어라! ”
켄신은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조금 생각하는듯 하더니 모두에게 묵직한 표정으로 말했다.
“ 그녀에게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말고 정중히 모시도록. 그녀는 신겐과 연락이 닿는 즉시, 타케다군으로 돌려보낸다. 위해를 가하는 자는 그 누구라도 내가 용서치 않을 것이다. 이상이다. ”
켄신의 말에 무어라 반발하려는 부하들도 있었으나 그는 그들의 말에 이론은 받지 않겠다 잘라내며 물러가라 일렀다. 그러나 그 중에서 제일 그를 이해하지 못한 건 그녀 쪽이었다.
“ 뭐지? 뭔가 할 말이 남았나? ”
“ 왜… 이렇게 하는 거예요? ”
“ 당연한 걸 묻는 구나.”
그녀를 지긋이 내려다보며 그가 입을 열었다.
“ 약자를 볼모로 삼아 적군에 쳐들어가는 것은 인간으로써의 도리가 아니지. 우에스기군에서는 그런 방식의 싸움은 하지 않는다. ”
“ 그게 나를 감옥에 가두지 않는 이유인가요? ”
“ 그렇다. ”
“ …내가 어떤 정보를 빼갈지도 모르는데도? ”
“ 너는 타케다군의 첩자인건가? ”
“ 아닙니다! 아니지만…. ”
웃는 소리가 들려 그의 얼굴을 쳐다보면 켄신은 그녀를 내려다보며 웃고 있었다. 켄신의 눈에는 어떠한 의심이나 불쾌감도 깃들어있지 않았다.
“ 그건 그 때의 얘기다. ”
올곧은 사람. 그녀가 켄신을 보고 내린 감상이었다.
“ 지키기 위해 검을 들겠다고 마음 먹은 이상, 자신의 신념에 반하는 짓을 결코 하지 않는다. 맹세하지. 너를 무사히 신겐의 곁으로 돌려보내주겠다. ”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무런 죄가 되지 않는 세상에서 이토록 바른 신념을 가진 이가 있을까. 물론 그 역시 온전히 깨끗한 사람이라 하기에는 분명 무리가 있을 것이다. 전란의 시대라고 한들, 전장에서 사람을 죽여온 것은 사실이니까. 하지만 그녀는 그의 맹세를 어째선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믿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우에스기 켄신, 그의 눈빛이 그리 말하고 있었다.
* * *
“ 리나가 붙잡혔다니… 그게 정말 입니까?! ”
“ 젠장! 나 때문이다. 내가 잘 지켜봤다면…! ”
우에스기군과의 접선 중에 기습의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큰 전투가 일어나게 되면 그 틈을 노려 싸움을 걸어오거나 경비가 느슨해진 성을 노리는 이들도 적지 않다. ‘지지않는 싸움’을 추구하는 신겐으로써는 합리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역시 그러한 방식을 비난할 생각은 없었다.
허나, 설마 우에스기군에게서 포로로 잡혀있던 리나를 돌려받는 도중에 그와 동맹국이었던 다테군에게 그녀를 가로채기 당하다니, 이건 우에스기군과 다테군의 자작극인가? 그러나 그렇다고 하기에는 우에스기군도 꽤나 당황하는 듯했다. 오랫동안 그를 보아온 신겐이 생각하기에, 켄신은 그런 비열한 수를 쓸 만한 인물은 아니었다.
“ 신겐, 이건 너만의 문제가 아닌듯하니 내게도 가담하게 해주겠나. 그녀를 되찾으러 말이지. ”
꽤나 화가 난 것처럼 보이는 그의 표정은, 신겐이 아는 한 여지껏 본 적 없는 것이었다.
* * * *
우에스기군에게 포로로 잡히는 것도 모자라서 이번에는 다테군에게 납치당하다니, 이렇게까지 인생이 다사다난하길 원하지는 않았다. 끌려오자마자 감옥행인가. 뭐, 포로니까 당연한 거겠지. 그런데 다테군은 왜 나를 납치할 필요가 있는 거지?
“ 당분간 잡혀있어줘야겠다. ”
“ 당분간 살아있어줘야겠다, 가 아니고? ”
다테군과 우에스기군은 동맹국이었을 터다. 우에스기군에 내가 포로로-취급은 거의 보호급이었지만- 잡혀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을 테지만 그 동맹을 깨면서까지 내게서 얻으려는 게 뭐지?
“ 그렇게 될 지도 모르지. 네가 순순히 내 말에 따른다면 괜찮겠지만. ”
“ ……. ”
“ …하지만, 너를 데려온건 단순히 포로로써 가치가 있기 때문이 아냐. ”
“ 뭐? 그럼 왜…. ”
“ 너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들었다. 돌연 나타나 어떤 병이나 상처도 치료 가능한 의술사라지. ”
의술사. 신아에서 이름 이외에 나를 부르는 또 하나의 명칭이었다. 어쩌면 이름보다 그 명칭이 더 알려져있을 지도 모르고. 전국시대와 닮은 것 같으면서도 다른 ‘신아’라는 세계에 오게 된 지도 얼마나 지났을까. 날짜를 세는 것이 아닌, 날씨의 변화로 세월을 가늠하는 곳이니 명확한 기간은 알 수 없으나 벌써 일기장을 다 채워갈 정도라면 짧은 시간은 아니었으리라. 이곳저곳 꽤 돌아다닌 것은 맞지만 설마 타국에까지 이름이 알려져있을 줄은 몰랐는데 인터넷도 없는 세상의 소문이 이토록 빠를 줄이야.
“ 아니라고 한다면, 죽일거고? ”
“ 머리가 돌아가는 모양이니 다행이군. 허튼 짓할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아. ”
차가운 표정의 그가 잠깐 자리를 뜬지 몇시간이 지났을까. 그는 곧 다시 내게 찾아와 감옥문을 열어주며 따라오라 말했다. 그를 따라 도착한 곳에는 한 남자가 굉장한 식은 땀을 흘려가며 괴로운 채로 누워있었다.
“ 독화살에 맞은 모양이다. ”
“ 이 사람을 치료하라고? ”
“ 그래. ”
과연, 거대한 두 군대를 당장 적으로 돌리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나를 납치했던 이유는 이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였나. 소중한 사람을 살리고 싶다는 염원은 누구나 같다. 그걸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사람들을 꽤 봐와서 안다. 이 녀석은 날 죽이지 못한다. 목숨이 보장되어 있다고 한다면, 진료는 최선을 다하자는 게 내 신조니까.
“ 약속할게. 이 사람, 꼭 구해주겠다고. ”
그렇게 밤이 되었을 때가 되서야 코쥬로-마사무네가 치료를 요청했던 남자의 이름이다-는 증상이 꽤나 호전되었다. 그의 몸에 흘러들어갔던 독은 강한 독도 아니었을 뿐더러 초기에 치료했기에 며칠 쉬고 나면 가뿐해질 것이다. 이 성 근처에 이렇다할 약초가 있었던 게 천운이었다. 나는 며칠 치의 약을 더 지어준 후, 마사무네에게 말했다.
“ 이제 며칠만 푹 쉬면 괜찮을 거야. 만들어준 약은 빼먹지 말고 먹이고. ”
“ …덕분에 살았다. 예를 표하지. 코쥬로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녀석이다. 그런 녀석을 구해줬으니, 원하는 만큼 불러라. ”
죽이니 마니 할 때는 언제고.
“ 원하는 만큼의 값을 지불하도록 하지. ”
마사무네는 처음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이제는 나를 어느정도 신뢰하게 된 모양인듯, 어느 새 조금은 긴장이 풀어진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찌릿찌릿한 공기를 휘감고 있던 것은 제 동료가 죽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함 때문이었을까.
“ 왜 그러지? ”
“ 돈은 됐고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 ”
나는 이 세계와는 맞지 않는다. 굳이 외관 때문이 아니어도 이 곳에서 섞여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때때로 깨닫는다. 그다지 도덕심도, 정의감도 강하지 않은 나였지만 전쟁이란 결국 사람을 죽이는 일이다. 대화를 거두고 힘으로 찍어누르는 야만적인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래서 특정한 군에 소속되는 것을 꺼려했고 이곳저곳을 떠돌며 사람들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살아야했기에 돈을 모으기 위함도 분명 많은 비중을 차지했을 터. 돈을 많이 주겠다는 이를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 지금부터 나는 여기서 도망갈 생각이야. 당신은 여기에 없었고, 나를 보지 못했어. 그리고 이제는 내 역할을 다했으니 나를 여기에 계속 붙잡아둘 이유도 없지. ”
머리가 좋은 그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단박에 알아차리고는 물었다.
“ 그게 네가 바라는 건가? ”
“ 응.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거든. ”
아직 무리하게 움직이면 안 되는데, 피를 토하는 한이 있더라도 나를 찾으러 올 사람이 있었다.
“ 맘대로 해라. 어차피 이제 네게는 볼 일이 없어. ”
“ 그럼 이만. 행운을 빌게. ”
마사무네는 내게서 몸을 돌려 가볍게 승낙했고 곧바로 어디로 나가면 된다느니 하는 정보를 흘려주었다. 나는 그의 그런 반응에 얼떨떨하면서도 작게 인사하고는 서둘러 성으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다.
“ 찾았다! ”
“ 여자가 도망쳤다! 쫓아라! ”
그가 일부러 병사들이 없을 법한 방향을 알려준 것인지 적당히 숨어가며 나올 수 있었으나 모두를 피하여 나오기는 역시 무리였는지 몇몇의 병사들에게 걸려 쫓기게 되었다. 서바이벌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대도 일반인인 나로서는 훈련이 되어있는 그들에게서 멀리 벗어날 수는 없었고, 그들과 나 사이의 거리가 점점 좁혀져 붙잡히려는 순간,
“ 하아아앗-! ”
붉은 빛이 눈앞을 매웠다. 누구보다도 따뜻한, 그만이 가진 다정한 색. 타케다 신겐이었다.
“ 괜찮나? ”
빨간색은 좋아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생명의 빛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내게는 제일 먼저 핏빛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가 가진 빨간색이라면 그렇게 싫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
“ 신겐씨…. ”
“ 무사해서 다행이다……. ”
묵직하게 감싸오는 그의 팔 안에서 나는 비로소 긴장이 풀렸다. 나를 빼내어오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신겐씨의 말에 서둘러 빠져나왔고 도중에 타케다군과 우에스기군이 함께 합세하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보였다.
우에스기군에서 돌려주기로한 포로를 중간에 가로채기 당했으니 자신에게도 책임감을 느낀건지, 아니면 다테군에게 선전포고를 하기 위함인지 알 수는 없었으나 신겐씨는 이 전부가 우에스기군과 다테군과의 자작극일 확률은 적다고 말했다. 우에스기군을 오래 알아온 것은 아니지만 나 역시 잠깐 그의 옆에 머물러있었을 때를 생각해보며 신겐씨의 말에 수긍했다.
* * * * *
켄신의 눈동자가 그녀를 향해 닿았다. 한 시가 바쁜 상황이었지만 이대로 타케다령(領)으로 돌아가버리면 그녀는 아마 그를 다시는 볼 일이 없을 것이다. 억지로 신겐을 멈춰세운 리나는 뒤돌아 그의 이름을 불렀다.
“ 켄신씨. ”
그대로 지나치려던 그는 리나의 부름에 말을 멈추고 똑바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 뭐지? ”
왜 자신을 구해주었느냐던가, 무슨 꿍꿍이냐던가 하는 말을 듣는다 해도 이상할 상황은 아니었다. 그녀를 포로로 삼았을 때에도 아무런 대가없이 그녀를 돌려주었으니까.
“ 감사합니다. 이 빚은 언젠가 갚겠습니다. ”
그런데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허리를 접어 고개를 푹 숙이고는 그에게 진심으로 감사함을 표시하고 있었다. 그건 감동이라기보다, 그의 가슴을 더 죄였다.
“ 그럴 필요는 없다. ”
“ 아뇨. 제가 마음이 편치 않으니- ”
“ 빚을 돌려준 것 뿐이니, 잊어라. ”
리나의 말을 제대로 듣기도 전에 켄신은 말을 달리게 했다.
“ 괜찮으십니까, 켄신님. ”
그녀는 어느 군에도 속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켄신의 눈에는 이미 타케다군의 사람이었다. 자신이 이렇게도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던가. 그저 다시 한 번 재회할 수만 있다면, 무사히 살아있는 것을 확인할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생각했다.
“ …괜찮지 않다고 한다면 같이 한 잔 어울려주겠느냐. ”
“ 예. 거절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
그녀가 자신에게 빚을 갚겠다고 했을 때,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해도 되겠느냐 말하고 싶었다. 그녀를 그냥 보낸 것을 후회하고 있지 않는다고 한다면 거짓말일지도 모른다.
「 환자들 한 명 한 명을 다 기억할 리 없잖아요.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나는데. 하지만 살려내지 못한 사람의 목숨은 무거워요. 그 사람들은… 눈을 감아도 잊을 수가 없어. 」
만약, 타케다군을 정복하고 그의 목을 치게 된다면, 아마 네 마음 속에 더욱 새겨질 자는 우에스기 켄신이 아닌 타케다 신겐이겠지.
※ 후기
한 편에 많은 내용을 넣으려다가 개연성도 빼고 캐붕을 넣어버린 것 같군요. 카게모치는 켄신사마가 종종 꿈에 대해서 술에 취해 이야기 하는 걸 들은 적이 있습니다. 리나가 그녀가 아닐까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 말 안 하는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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